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통영IC에서 통영시청 방면으로 가다 곧바로 좌회전을 하면 아주 색다른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통영옻칠미술관. 우리나라
전통 공예인 옻칠을 예술로 승화시킨 곳이자 '옻칠 페인팅(ottchil painting)'의 모든 것이 집약돼 있는 곳이다.
중1 때 옻칠 미술 입문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교사
홍익대, 숙명여대 교수 역임
1998년 전통 공예 부흥 위해 도미
'옻칠 페인팅' 고유명사화 성과
2004년 귀국… 옻칠미술관 개관
"옻칠그림 장르 확보 여생 바칠 터"옻칠미술관을 만든 이는 김성수(78)
관장. 김 관장의 삶은 옻칠을 떠나선 생각하기 어렵다. 옻칠과 함께 한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어섰다.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수지 유성도료로 그림을 그리고
도색을 하는 옻칠은 천년을 이어온 빛나는
전통문화다. 옷칠 페인팅 역시 그가 평생 공들여 만들어낸 고유명사다.
그가 옻칠 페인팅을 고유명사화 하기 이전에는
미국 등지에서 칠기공예를 총칭하는 '래커 페인팅(laquer painting)'으로 불렸다고 한다.
김 관장은 "래커 페인팅은 옻이 아닌 가짜 옻인 '카슈'를 포함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옻칠이란 단어를 고유명사화 했고, 통영옻칠미술관의
이름도 그렇게 해서 붙여졌다"고 말했다.
옻으로 만든 나전칠기와 옻칠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가짜인 카슈에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김 관장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카슈는 옻에 비해 방부나
방수, 방충, 광채, 내구성, 내한성, 아름다움 등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가 6년 동안(1998~2004)의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옻칠미술관을 개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통영옻칠미술관이 개관된 것은 2006년 6월. 이 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옻칠전문미술관이다. 김 관장이 사재를 털어 건립했고 운영도 마찬가지다.
3천997㎡ 부지에 4개의 전시설을 갖췄고 국내·외 유명 작가의 주옥 같은 옻칠 작품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미술관은 작품 전시나 판매 외 국내·외 작가들이나 작가 지망생들의 창작교육과 작품활동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 관장은 "사라져가는 빛나는 천년의 옻칠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나아가 이를 현대화, 세계화하는 것이 나의 길이요 꿈이다. 옻칠미술관도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가 옻칠미술에 입문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오른다. 그리고 그 당시 삶의 공간은 도립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를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다.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설립됐고 우리나라 서구
미술교육기관의 효시로, 김 관장은 1기생이다.
그는 이곳에서 2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부산의 모 고교에서 주경야독하고 다시 고향 통영으로 돌아와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의 교사로 활동한다.
그러다가 1963년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생활을
청산한 뒤 상경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배우고 가르친 실력을 바탕으로 밤낮없이 창작활동에 몰두한 끝에 1963년 10월 제12회 국전에 출품한 공예품이 최고상으로 뽑혔고 연이어 4차례나 국전에서 특선을 했다.
이들 작품이 고가에 팔리면서 작업장 마련은 물론 몸값이 수직 상승하면서 홍익대 교수(1969~1972)와 숙명여대 교수(1972~1998)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교수생활도 청산하고 1998년 2월 돌연 미국으로 떠난다. 가짜 나전칠기와 싸워서 쇠락해 가는 전통 나전칠기공예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에서 전통 나전칠기를 만들어 한국에 역수입하도록 한다는 복안으로
이민을 갔는데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이 전통 나전칠기에 매료돼 찬사를 아끼지 않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옻칠 공예 외 옻칠그림 부문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단연 독보적 인물이다. 옻칠그림의 장르 확보와 세계화는 그의 또 다른 일생의 꿈이다.
칠흑같이 어둡지만 흑진주같이 빛나는 광채를 발하는 옻수액. 옻칠과 함께 60여 년을 함께한 그의 삶은 옻의 속성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글·
사진=백남경 기자 nkbac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