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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수 천년 동안 전래되어온 천년의 신비 채화칠기와 나전칠기는 뿌리깊은 전통예술이다. 1593년 성웅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하였고, 12공방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하므로 인하여 통영이 나전칠기를 생산하는 본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400여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작성일 : 13-06-14 17:30
[한산신문 2013.06.05] "세계학술대회에서 옻칠(Ottchil)을 바로잡은 것만으로 감격"
 글쓴이 : 옻칠미술관
조회 : 5,208  
[한산신문]

"세계학술대회에서 옻칠(Ottchil)을 바로잡은 것만으로 감격"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장, 미국 버팔로 옻칠 국제심포지엄 한국대표 발표

옻칠 세계화 앞장…호주, 중국, 미국 초청 순회전, 국제 레지던스 본격화

2013.06.05  23:29:54                            김영화 기자  |  hannews@chol.com  
 
▲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

"세계 학술대회에서 타이틀을 옻칠(Ottchil)이라고 바로 잡은 것만 해도 감격입니다. 이제까지 한중일 제각각 불리던 칠을 영어로 옮길 때면 늘 일본말 캐슈 혹은 락카였지요. 하지만 이번 미국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당당히 한국의 옻칠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석학 100여 명이 옻칠의 발전방향을 논했습니다. 가장 큰 성과이자 눈물 나는 일입니다."

단 1번 칠에 1000년을 가는 옻칠(Ottchil), 그 위대성과 불멸성을 무기로 세계무대로 진출시킨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78) 관장.

지난 5월 20∼25일 미국 버팔로 주립대학 아시아 옻칠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 대표로 참가, '옻칠의 복원과 새로운 탄생'이라는 주제로 옻칠의 세계화와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학술 발표를 펼쳤다.

옻칠의 특성과 현대화 작업을 세계인이 이해하기 싶게 입체적 영상과 영문 자막이 있는 프리젠테이션을 펼쳐 발표자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특히 김 관장이 세계 학술 무대에서 한국의 옻칠을 학술 용어로 정립시킨 것은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것뿐만 아니라 옻칠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김성수 관장은 1951년 통영에 세워진 경남 도립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1기생으로 입학한 후 60여 년간 옻칠복원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았다.

"전쟁터의 화약 냄새가 이 땅을 덮는 와중에 옻칠학교가 설립됐다는 건 옻칠의 중요함을 입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김 관장은 늘 강조했다.

하지만 래커나 캐슈 등 짝퉁 옻칠이 대부분인 이 땅에서 옻칠 외길만 걷는 일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인내를 담고 있는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친척아저씨의 권유로 고향인 통영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를 다닌 그는 스승 김봉룡, 안용호, 장윤성 등에게 전통 칠기법을 사사했고, 유강열에게 현대 디자인을 배웠다.

또 옻칠계의 거장 강창원을 비롯 이중섭, 김용주, 김종식 화백과 초정 김상옥 선생을 이때 만나 조언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스승들은 "전통기법을 잇기 위해 재료와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세계를 다스려야 한다"는 배움을 주었고, "해 봐"라는 한마디로 제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했다. 이 가르침은 김 관장이 제자들에게 똑같이 내림하는 교육법이다.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에서 2년을 공부한 김 관장은 부산에서 고교를 다니며 밤에는 옻칠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미군들이 자개표지의 앨범이나 명패를 좋아해 일감이 밀려들었다.

63년 상경 후에는 친구의 자개 옻칠공장에서 일하다 그 해 자개 옻칠 문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공예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연이어 12~15회 특선을 차지한 그는 31세에 국전 추천작가가 됐다. 74년부터 18개월 동안은 튀니지 정부의 요청으로 튀니지에서 한국옻칠기법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옻나무에서 뽑아낸 칠액을 정제한 무공해 천연 도료로 옻칠 기법을 사용한 옻칠 그림도 그렸다.

귀국 후에는 '김성수 상감기법'을 고안했고, 98년에는 교수로 재직한 숙명여대를 정년퇴임한 후 미국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김 관장은 2006년 6월 사비 15억원을 들여 통영에 국내 유일의 1종 사설 옻칠미술관을 세우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통영이 400여 년 동안 옻칠의 중심이었는데 점점 명성이 퇴색하고 있더군요. 견딜 수가 없어 돌아왔지요. 사실 옻은 금보다 귀합니다. 옻칠을 하면 부식도 방지되고 벌레도 끼지 않고 수분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도 있어요. 고려시대엔 대장경과 경함에 옻칠을 해 방수방충을 했고, 요즘은 우주선에 옻칠을 해 부식을 막는답니다"

그는 한국보다 옻을 늦게 사용한 일본이 옻칠의 원류처럼 오인되는 실정을 우려해 각종 국제 협회나 모임에서 '옻칠(Ottchil)'을 고유명사화해 사용했다.

그 노력이 이번 미국 국제 심포지엄에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미국 자체에서 아시아 옻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연 것도 최초였고, 학술대회 명칭 자체가 옻칠이었으니 말이다.

일본은 국가가 적극 나서 인간 국보와 과학자, 복원가, 교수, 옻칠 작가 등 초청자 외에도 많은 전문가를 파견했고, 중국 역시 대대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한국은 김성수 관장을 비롯 명장 손대현, 옻칠연구가 한종수 박사 3명만이 참석, 모두 발표자로 나서고 초청 전시회도 병행했다.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베트남,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칠 전문가 100명의 석학이 한국 옻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김관장은 6월 10일부터 호주 초청 전시회에 나서고, 6월말에서 7월에는 옻칠과 조각의 도시 중국 산서성에서 한중일 거장 옻칠 살롱전 초대를 받아 중국으로 향한다.

또 내년 3월에는 미국 콜로로다 뎀버 뮤지엄 초대로 미국을 다시 한 번 찾을 계획이다.

취재 열기도 대단하다. 기자가 통영옻칠미술관을 방문한 28일과 29일 각종 TV 매체에서 다큐와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김 관장은 "세계무대에서는 한국 옻칠의 우수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우리 시민들과 국민들은 그 점을 간과하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결국 관심 부족이다. 이 점이 사실 벅차고 힘든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또 "이번 미국 심포지엄만 봐도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국가가 나서 옻칠 산업을 장려하고 칠의 도시 이시카와현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 운송비와 보험비 등을 전액 지원함은 물론 많은 전문가를 대량 투입하고 지원한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 버팔로 대학이 초청하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한 덕분으로 이번 심포지엄의 결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개최된 이 심포지엄에 세계가 놀라고 옻칠이라는 타이틀에 또 한번 놀라지만 우리는 너무 옆에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어렵다는 전통 지키기를 김 관장은 혼자 60여 년을 해 왔다. 오히려 다른 문화재를 발굴하고 전통의 현대화에 몰두했다.

한국의 옻칠에 통영의 나전칠기, 더 나아가 옻칠회화라는 미술의 한 장르를 창출해 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옻칠회화특별전'을 중국·호주에서 17회나 여는 등 지역문화 예술 향유권 신장과 문화유산 보전에 노력했고, 미지의 영역이던 한국옻칠회화를 미술의 한 장르로 승화시켰다.

이런 노력이 본보기가 돼 지난해 전국 800여 개가 넘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대표, 제15회 전국 박물관 대회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후학 양성이라는 대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됐다.

국내 최초 옻칠미술관 설립, 그로부터 6년 미술관 부설 옻칠아카데미 인재양성 레지던트 교육관을 건립의 신화를 창조했다.

이제 6월이면 호주와 중국, 한국의 칠 전문 작가 5명이 3개월간 옻칠미술관에 상주하면서 레지던트 교육을 받고 한 달간 전시회를 여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열띤 경쟁 속에서 국제적 작가를 선발, 전문가를 양성함은 물론 시민을 위한 아카데미,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톡톡 토요문화 다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살아 숨쉬고 있다.

김 관장은 "옻칠을 살리려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굉장히 어려운 프로젝트이지만 상주 레지던트 프로그램은 필수다. 현재 선발자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영어 신청서가 쇄도하고 있다. 마음은 바쁘고 여러 가지 점에서 힘도 들지만 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말한다.

잃어버린 한국 옻칠세계를 찾기까지 인고의 세월 60여 년. 그것은 김성수 한 개인 삶의 과정으로서도 위대하지만 이 시대 살아있는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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