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15-03-17 17:43
|
[경남매일 2015.03.15] “창원 다호리, 고대 옻칠 중심지”
|
|
|
글쓴이 :
옻칠미술관
 조회 : 5,768
|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419 [2977] |
| "창원 다호리, 고대 옻칠 중심지” |
| 김성수 통영옻칠박물관장 출토유물 BC 2C 전후 제작 김은경 논문 “칠기의 보고” |
|
|
|
|
| |
 |
|
| ▲ 창원이 2천년 전 우리나라 고대 옻칠문화를 연 중심지라는 주장이 통영옻칠박물관 김성수 관장에 의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 창원이 2천년 전 우리나라 고대 옻칠문화를 연 중심지라는 주장이 통영옻칠박물관 김성수 관장에 의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15일 김 관장에 따르면 창원시 의창구 동면 다호리 고분군 유적에서 출토된 칠기 유물은 기원전 2세기 후반~2세기 전엽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옻칠예술사의 시작을 여는 귀중한 자료다. 고고학계에는 한국 옻칠예술의 시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기원전 1세기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다호리 유적은 한반도 중ㆍ남부를 통틀어 유례없이 많은 칠기유물이 출토된 곳으로, 중국과는 다른 한반도 옻칠예술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기원 전후 칠기의 보고(寶庫)라는 것이 관련학자의 논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일부 고고학자와 전문가 사이에서만 알려졌을 뿐 정작 유물이 나온 창원은 모르고 있다고 김 관장은 밝히고 있다.
김 관장의 제자 김은경 옻칠미연구소장이 최근 쓴 논문 ‘다호리 유적 출토 칠기유물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2천년전 다호리 지역에서 칠기가 매우 성행했다. 9차까지 발굴한 총 106기 고분 중 50기에서 칠기가 출토돼 중국 옻칠예술의 전성기를 이룬 전국시대 장사(長沙)지역 초나라 무덤 2천48기 중 129기에서만 칠기가 나온 것과 비교하면 다호리유적은 칠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부장량과 분포, 다양한 기형, 사용된 기법을 보면 다호리 일대가 한반도 옻칠예술의 전성기를 연 것으로 평가된다. 원형두, 우각형칠기, 칠초, 네발접시, 원통형칠기, 칠기부채, 칠기배, 활, 봉상칠기, 도태칠기 등 형태가 다양하고 원통형칠기에 사용된 권제(卷制)기법에서 보듯 숙련된 기법이 사용됐다. 옻칠신발과 낚시바늘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칠기유물이다.
다호리 일대가 고대 한반도 칠기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흔적은 주변 지명에서도 나타난다. 칠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옻나무 군락이 필요하다. 7~8년생 옻나무 한그루에서 채취할 수 있는 칠액은 150~200g 정도에 불과하다. 함안군의 칠원(漆原).칠북(漆北).칠서(漆西) 3개 면은 삼국사기에 칠포국(漆浦國)으로 기록돼 있고, 신라시대에서는 칠토현(漆吐縣- 칠을 드러내다라는 뜻) 또는 칠제현(漆堤縣-옻나무로 제방을 했다는 의미)으로 불렸다. 거제 하청면의 칠천도(漆川島)도 다호리와 가깝다. 다호리는 기원전 배가 닿은 곳으로 함안 삼칠면과 칠천도에서 옻나무를 수급했을 것으로 김 관장은 보고 있다.
옻칠 공예품의 기원은 약 9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옷칠공예역사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석관묘에서 청동기 옻칠파편이 발견됨으로써 기원전 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다호리 출토 칠기유물은 세형동검 칠초(옻칠을 한 칼자루), 원통형 칠기에서 보듯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입해 발전한 것이 아닌 이미 독자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형동검은 한반도 고유의 동검이며, 원통형 칠기는 우리나라 남부외에는 출토된 바 없다.
김성수 관장은 “기원 전후 약 4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다호리 유적은 우리나라 유적지 중 가장 많은 칠기가 발굴된 칠기의 보고”라며 “다호리는 김해와 대구, 경주 등 낙동강 중ㆍ상류지역으로 칠기문화를 파급시킨 고대 옻칠문화의 전성기를 연 중심지”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전통옻칠의 대가이자 현대 옻칠회화를 창시한 세계적 옻칠예술가이다.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