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수 옻칠관장과 로비스트 박동선씨와 인연
김성수 옻칠미술관장과 박동선 차인회 초대회장 반세기만 재회
[2009-02-27 오후 3:35:00]
지난 24일 통영 옻칠미술관에서 약 반세기만의 귀한 만남이 있었다.
주인공은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장과 박동선 한국차인회 초대회장과의 재회였다.
한국차인회 최향옥 통영지부회장의 초대로 통영을 내방한 박동선씨는 전국순회 공연중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씨와 동행이었다.
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첫 단추를 채워준 분이 박동선 회장이라고 회고하며 늘 만남을 소망해 오셨다고 한다. 소망하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두 분의 첫 인연은 지난 1963년 12회 국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공예부가 시상권에 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 그해는 공예작품이 특선 4명이나 선정되었지만 김성수 이름은 아무데도 없었다.
낙선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내 작품이 뽑히지 않았음에 국전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되뇌이며 다시 시작을 다짐하였는데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대상에 자신의 이름이 있지 않은가.
그 대상작품을 박동선씨가 사주었고, 대상상금 2만원과 작품값(시상금의 2배 가량됨)으로 서울마포에 작업실이 있는 집을 얻어 옻칠예의 꿈을 키우게 된 원동력으로 60여년 옷칠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두 분의 만남은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미술로 발전시키며 옻칠의 맥을 이어가도록 교육하는 오늘을 맞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가 됐다.
당시 20대 후반의 박동선씨는 국전이 끝나고 작가들을 중식당에 초대해 식사대접을 하였는데 자신의 앞자리에 초췌한 박씨성의 작가가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여 어떻게 도우면 되는지 묻자, 자신은 간이 안 좋아 얼마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하였더니, 자신의 작업실로 꼭 와줄 것을 당부하여 방문하자 감사의 맘으로 그림을 몽땅 드릴테니 가져가라고 하였다.
거절하고 돌아오자 그림을 보내왔었는데 그때 그 작가가 바로 박수근화백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액자값이 없어 캔버스채로 국전에 응모하던 시절 그는 많은 작가들에게 힘을 주기위해 작품들을 사주며 서포터를 아끼지 않으며 미술발전의 기초를 다지는데도 한몫을 담당했다.
박동선 회장은 평안남도 순천 출생으로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의 고급 사교클럽 조지타운클럽을 공동 창설하여 전.현직 고위간부, 정치인, 법조인, 로비스트등 회원으로 활동하는 클럽에서 국제사회의 한사람이 됐다.
중2때부터 도자기를 수집하고 목기를 좋아하여 워싱턴에 집을 지어 실내장식을 도자기, 목기, 동양화로 장식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표하며 차 문화, 난 등의 정서로 미국식에서 한국적인 문화를 알리며 미국 국회의원 등 형님, 아저씨, 할아버지하며 극진히 대접하며 인맥을 쌓아갔다.
한국인으로서 사는 것은 우리 것을 알아야 하기에 다도를 익혔고, 다도는 건강도 지키고 다기, 도자기가 필요하고 다예절로 한복을 입고 다실의 동양적 풍취와 동양화, 난등 전통문화가 한자리에 자연스럽게 모임으로 정갈했다. 또 토속적인 한국정서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서양사람들에게 한국적인 것으로 큰 덕을 보았다고 한다.
정갈함, 참을성, 사랑, 예의범절 등이 어우러진 차 문화야 말로 사람의 귀천이 없고 종교 등 모든 것을 초월한 화합의 문화이다. 그렇게 한국차인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오늘의 통영을 느끼며, 경남에서의 문화도시가 진주이던 것이 지금은 통영이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는 문화도시로써 정착하고 있어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지구촌이 하나로인 시대, 한국도 한 부분 세계화에 동참, 통영을 세계에 알리는 구심체를 운영하면 좋겠다고 표현했다.
함께 한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젊은 날 많은 콩쿨에서 우승하며 카네기홀이 선정한 세계3대 피아니스트로 최고를 지향하던 삶에서의 고통과 회의로 지극히 평범한 남성과 결혼 2자녀를 출산하여 키우며 그 또한 어려운 것이 삶임을 깨닫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병고와의 싸움을 겪으며 최고의 삶보다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삶이란 성실한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가족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채워지는 생활로 평범하지만 너무나 귀하고 어려운 일"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새CD를 출시, 가족적인 아름다움과 낭만이 깃든 곡들로 채워 넣고 '밤과 꿈'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녀는 다시 통영을 찾을 때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통영의 무대에서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통영시민들과 마주하고 싶음을 피력했다.
1박2일간의 손님을 맞으며 로비스트 박동선에 대해 새로운 앎의 기회였다. 남북대치로 극심한 불안의 시절 국가와 민족을 위해 미 하원의원을 로비하여 주한미군철수를 반대하게 했던 일명 '코리아게이트'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도 자신이 어디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음을 몸으로 보였다.
통영이 많은 이들의 관심의 영역에 있음을 새삼 느끼며, 더욱 시민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예술인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2일 동안 통영을 소개해주신 서유승 선생께도 감사를 표했다.
김점련시민기자(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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